투자 그릇을 키운다는 것: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담기는 투자 그릇

투자 그릇을 키운다는 것: 2020년 3월 폭락장에서 놓친 5가지

투자 그릇이 작으면 좋은 기회가 와도 담기지 않습니다. 2020년 3월 폭락장에서 흐름을 알아보고도 크게 담지 못했던 기록과, 다음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경제 뉴스를 정리하는 석봉이 엄마입니다.

투자 그릇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을 땐 그저 좋은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안 건,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 앞에 서 보고 나서였습니다.

오늘은 2020년 3월, 제 눈앞에서 기회가 지나가던 그 며칠을 복기해 보려고 합니다.

1. 상한가가 줄줄이 뜨는데도 나는 몰랐다

코로나로 인해 전국이, 전 세계가 이렇게까지 들썩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조금 독한 독감”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초에 코로나 관련 주식 수십 개가 동시에 상한가를 치는 걸 보면서도 ‘이게 뭔가 이상한데?’ 싶으면서도, 팬데믹이라는 단어는 끝내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HTS를 뚫어져라 보면서도 “이럴 수가… 뭔가 큰 게 움직이고 있어…”라는 막연한 느낌만 있었지,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제 눈앞에서 기회는 또 한 번 지나가 버렸습니다.

과감하게 관련주에 올라타지도, 현금을 비축해 두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아, 내가 또 놓쳤구나” 깨닫게 되는 느림보. 그게 그때의 저였습니다.


2. 3월,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던 날

하지만 3월, 지수가 폭락하던 그날은 달랐습니다. 처음으로 몸이 떨릴 만큼 소름이 돋았습니다.

짧은 기간 주식을 지켜본 것뿐인데도 설명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상승장도 하락장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뭔가 큰 장이 펼쳐질 것 같은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실제로 벌어지고 있던 일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느낀 그 공기에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2020년 3월 12일, 코스피에 사이드카가 발동됐습니다. 코스피 시장에서는 2011년 10월 이후 8년 5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3월 13일에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서킷브레이커가 동시에 발동됐습니다.

그리고 3월 19일, 두 지수가 장중 8%대로 무너지며 코스피 1500선이 붕괴됐고 서킷브레이커가 또 한 번 동시에 발동됐습니다.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290원을 넘어섰습니다.

시장이 제도적 안전장치를 며칠 새 몇 번이나 켜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느낀 떨림은 예감이 아니라, 시장이 실제로 내는 소리를 몸이 먼저 들은 것이었습니다.

직감은 맞았는데, 행동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 증권계좌에 현금을 10%도 안 남기고, 그동안 눈여겨봤던 종목들을 골고루 담았습니다.

크게 베팅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아이들 계좌에 소액으로만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그릇이 그 정도밖에 안 됐던 저를 탓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 당시 제가 가진 한계였던 겁니다.


3. 투자 그릇이 작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 뒤로 오래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알아보고도 담지 못했을까.

처음엔 ‘용기가 없어서’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용기는 그릇의 재료가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그릇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현금입니다. 그때 제 계좌에는 담을 돈이 없었습니다. 기회를 알아보는 눈과 기회를 담을 돈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연초부터 이상 신호를 느꼈으면서도 현금을 만들어 두지 않았던 것, 그게 첫 번째 구멍이었습니다.

둘째, 미리 만들어 둔 목록입니다. 다행히 이건 있었습니다. “그동안 눈여겨봤던 종목들”이 있었기에 그 며칠 안에 매수가 가능했습니다. 만약 그 목록조차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못 샀을 겁니다.

셋째, 얼마를 담을지 정해 둔 기준입니다. 이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의 감정이 금액을 정해 버렸고, 두려움이 큰 날에는 두려움만큼만 담게 됐습니다.

결국 투자 그릇이란 담대함이 아니라 준비의 총합이었습니다. 준비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작은 그릇에 담기는 만큼만 담기고, 나머지는 전부 넘쳐 흘러버립니다.


4. 왜 하필 아이들 계좌였을까

이 대목을 솔직하게 적고 싶습니다.

제 계좌가 아니라 아이들 계좌에 넣은 건 사실 두려움을 우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확신이 섰다면 제 계좌로 들어갔을 겁니다. 아이들 계좌에 소액으로 들어간다는 선택은 “틀려도 크게 다치지 않는 쪽”을 고른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 이름으로 장기 투자 계좌를 운용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게 전략이 아니라 감정의 타협이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구분합니다. 계좌를 나누는 건 목적이 달라서여야 하고, 무서워서 나누는 거라면 그건 계좌 문제가 아니라 금액 문제입니다. 무서운 금액은 애초에 틀린 금액입니다.


5. 투자 그릇을 키우기 위해 지금 하는 다섯 가지

세상은 돌고 돕니다. 그 기회는 언젠가 다시 옵니다. 그때는 흘리지 않고, 넘치지 않게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준비해 두는 것들입니다.

하나, 평상시 현금 비중을 정해 둡니다. 폭락이 왔을 때 만드는 현금은 늦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시기에 미리 비워 두는 자리가 곧 그릇의 크기입니다.

둘, 관심 종목 목록을 상시로 관리합니다. 2020년에 유일하게 잘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급락장에서는 종목을 고를 시간이 없습니다. 이미 만들어 둔 목록에서 꺼내 쓸 뿐입니다.

셋, 사건이 아니라 지표로 반응하기로 했습니다. 뉴스는 항상 늦습니다. 대신 서킷브레이커나 사이드카 같은 제도적 신호, 환율, 거래대금처럼 확인 가능한 숫자를 봅니다. 지수와 거래 통계는 KRX 정보데이터시스템에서, 기업 공시는 전자공시시스템 DART에서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넷, 분할로 들어갈 계획을 미리 적어 둡니다. 한 번에 전부 담으려 하면 무서워서 아예 못 담습니다. 몇 번에 나눠 담을지 미리 정해 두면, 첫 회차는 훨씬 가볍게 누를 수 있습니다.

다섯, 못 담은 날도 기록합니다. 실행한 매매만 기록하면 제 약점이 안 보입니다. 주저하다 지나간 날을 적어 두니 그제야 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에게 없었던 것을 표로 적어 봤다

후회를 목록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적고 나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가 분명해졌습니다.

필요했던 것 2020년 3월의 나 지금 준비해 둔 것
담을 현금 거의 없었음 평상시 비중을 미리 정해 둠
살 종목 목록 있었음 (유일한 성공) 상시 업데이트
얼마나 담을지 기준 없었음 분할 횟수와 회차별 금액을 문서로
어떤 신호에 움직일지 뉴스에 반응 확인 가능한 지표로 전환
실행 기록 없었음 못 담은 날까지 기록

다섯 칸 중 채워져 있던 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가 있었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한 칸이 채워져 있으면 한 칸만큼은 담깁니다. 그래서 지금 나머지 네 칸을 채우는 중입니다.


6. “한방”은 준비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보상이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한방, 대박. 그건 환상이 아니라 차곡차곡 준비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보상일 뿐입니다. 2020년 3월에 크게 담은 사람들은 그날 용감했던 게 아니라, 그 전에 현금과 목록과 기준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회는 공평하게 옵니다. 다만 담기는 양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대신, 지금 그릇을 넓히는 일을 합니다. 시장이 언제 다시 흔들릴지는 모르지만, 그릇의 크기는 제가 지금 정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럼 안녕.


자주 묻는 질문

Q. 폭락장에서 현금 비중은 얼마가 적당한가요? 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중요한 건 비율의 숫자가 아니라 그 비율을 평온할 때 미리 정해 두었는가입니다. 폭락이 시작된 뒤에 정하는 비중은 대개 공포에 맞춰 정해집니다.

Q. 기회가 온 걸 알았는데도 손이 안 나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금액이 문제였습니다. 무서워서 못 누르는 금액은 애초에 제게 맞지 않는 금액이었습니다. 손이 나가는 금액까지 낮춰서 시작하고, 나눠서 들어가는 방식이 저에게는 답이었습니다.

Q.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자체가 매수 신호나 매도 신호는 아닙니다. 시장의 변동성이 극단적이라는 표시일 뿐입니다. 저는 이런 날일수록 새 판단을 하지 않고, 평소에 적어 둔 계획대로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Q. 아이 명의 계좌로 투자해도 괜찮을까요? 목적이 분명하다면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증여 신고 등 확인할 사항이 있어 제도적인 부분은 전문가나 공식 자료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다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제도가 아니라, 무서워서 계좌를 바꾸는 선택은 전략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Q. 놓친 기회를 계속 후회하게 됩니다. 저도 오래 그랬습니다. 그런데 후회는 다음 기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대신 “그때 무엇이 없어서 못 담았는가”를 목록으로 적으면, 후회가 준비 목록으로 바뀝니다. 이 글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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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의사항 본 글은 작성자의 과거 경험을 돌아본 개인적인 기록이며, 특정 종목이나 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시기와 수치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의 투자 판단 근거가 아닙니다. 작성자는 금융투자업자가 아니며, 모든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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